장흥향교

1398년(태조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30년(인조8년)에 중수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제기고(祭器庫)·교직실(校直室)·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7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 더보기

천정대

백제 때 재상을 선출하던 곳으로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窺岩面) 호암리에 있다. 면적은 257,356㎡로 고대부터 신성시하던 곳이다. 백마강을 1.5㎞ 거슬러 올라가면 범바위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서 동북쪽에 임금바위 또는 신하바위라고 부르는 바위들이 있는 곳이 천정대이다.『삼국유사(三國遺事)』에 보면 호암사(虎岩寺)에는 정사암(政事岩)이란 바위가 있는데, 나라에서 재상을 뽑을 적에 후보자 3, 4명의 이름을 적어 함봉(函封)하여 이곳 바위 위에 두었다가 열어보아, 이름 위에 도장이 … 더보기

사효자굴

사효굴이라고도 불리는 사효자굴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의 4촌동생인 재훈(再勳)의 네 아들 결, 청, 형, 호는 왜병을 피해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비슬산 중턱(양리)에 있는 동굴에 숨었다. 왜병들이 굴 앞을 지날 때 아버지의 기침소리로 굴에 사람이 있음을 알고 해치려하자 효성이 지극한 아들들이 차례로 나아가 죽음을 당하였다. 마침내 왜병들도 그들의 효행에 감동하여 아버지를 풀어주면서 ‘4효자의 아버지(四孝子之父)’라고 칭송하며, 그 … 더보기

원평허브농원

허브와 아로마테라피의 “원평허브농원” 재배면적이 총 4,000여 평의 대규모인 원평허브농원은 재배포장이 400여 평, 전시포장 500평, 관리사와 강의온실, 야외정원 1500여 평으로 구성되어 있다. 야외정원에는 허브와 유실수를 동시에 배치하여 꽃과 허브의 향, 그리고 열매가 주는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전시포장은 허브와 꽃들 사이사이에 마련된 Tea 테이블에서 새로운 느낌의 허브차를 마시고 허브 향기를 맡으며 잠시 생활의 여유를 느낄 … 더보기

여송정(餘松亭)

정선읍으로부터 승용차로 약 30분 거리에 거리에 아우라지에 정자각인 여송정이 있다. 소나무와 어우러진 정자 여송정에는 아우라지 처녀상이 있다. 정선아리랑 ‘애정편’을 기리고자 정선군에서 처녀상을 세웠다고 한다. 아우라지 처녀와 애절한 사랑을 나눈 총각은 강 건너 정선아리랑전수관 근처에서 여송정을 향해 세워져 있다. 아우라지 강변에 얽힌 송천의 처녀와 여량의 총각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전하기 위하여 송천과 여량, 두 마을의 이름을 … 더보기

해미순교성지(여숫골)

1866년(조선 고종 3) 병인박해(丙寅迫害) 이후 1882년(고종 19) 사이에 진행된 천주교 박해 때 충청도 각 고을에서 붙잡혀온 천주교 신자 1000여 명이 생매장당한 곳이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을 해미읍성 서문 밖의 돌다리에서 자리개질 등으로 처형하였는데, 숫자가 너무 많자 해미천에 큰 구덩이를 파고 모두 생매장하였다고 전한다. 당시 죽음을 앞둔 천주교 신자들이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기도를 하였는데, 마을 주민들이 이 … 더보기

슈퍼팜

슈퍼 팜은 5000여㎡(1500여 평) 규모에 최신식 재배 시설을 갖춘 체험농장이다. 밭에서 기르는 전통 방식이 아니라 수경재배를 통해 딸기를 키운다. 레일처럼 생긴 긴 베드(이랑에 해당하는 시설)에 상토를 채워서 모종을 심고 양액(비료를 물에 녹인 것) 공급 장치로 17가지 영양소를 공급하며 재배한다. 12월 초부터 5월 말까지 운영되고 있으며 개장 기간 중에는 휴무 없이 운영한다. 자녀와 딸기 수확 체험과 … 더보기

숫골

숫골은 영주의 진산으로 불리는 철탄산 아래 자리한 첫 번째 마을이다. 숫골 이란 지명에 대해선 여러 유래가 전하는데 삼국시대 신라군 주둔지가 있어 ‘술골’로 불렸다는 설과, 일제강점기에 전염병 환자들을 수용하던 막사가 있어 ‘수용소골’로 불리던 것이 지금의 숫골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처럼 오랜 역사를 품은 마을은 1942년 영주역이 들어서면서 번성하기 시작했고, 해방 이후엔 고향으로 돌아온 이들이 모여 살기 … 더보기

도초 시목해수욕장

모래사장이 반원형으로 둥글게 펼쳐져 있는 도초면 시목해수욕장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내에 위치하여 물이 수정처럼 맑고 깨끗하며, 주변에 감나무가 많다고 해서 시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곳은 3면이 산과 바다로 마치 병풍을 쳐놓은 듯한 포근한 지형에 해안 2km에는 사방사업을 해놓고 있으며 경사가 완만하여 위험도가 없는 곳이다. 백사장의 길이는 2.5㎞, 폭은 100m로 군데군데 모래성이 쌓아진 것이 특징이며, 모래사장을 감싸고 있는 … 더보기

영귀서원

1694년(숙종 2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인후(金麟厚)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옥과면 죽림리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29년(영조 5)에 유팽로(柳彭老)와 신이강(辛二剛)을 추가 배향하고, 1797년(정조 21)에 허계(許繼), 1846년(헌종 12)에 허소(許紹)를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60년 전라남도 유림에 의하여 현재의 위치에 복원되었다. 1965년에는 위백규(魏伯珪)를 봉안하여, 6위를 모시게 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