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련암(창녕)



* 영산 대흥사의 법등을 잇는 청련암 *

영취산은 고려 때 지공(指空) 법사가, 석가모니가 설법했던 천축국(天竺國)의 영취산과 모양이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의 북녘 기슭에 자리한 청련사는 영취산에 있던 대흥사(大興寺)의 작은 암자로 세워졌으며, 대흥사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암(東庵)이라 불려왔다. 대흥사는 청련사뿐만 아니라 인근의 극락암(極樂庵)ㆍ삼성암(三聖庵)의 기록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일대의 많은 암자들을 거느릴 만큼 사격이 높았던 듯하다. 따라서 청련사의 중창주 덕암(德庵) 스님 또한 사라져버린 대흥사를 아쉬워하며 퇴락한 암자를 새롭게 일으켜 세울 목적으로 법당을 창건했을 것이다.

현재 청련사에 남아 있는 현판자료에는 하나같이 청련암 앞에 ‘영산 대흥사’를 붙이고 있어, 대흥사는 이미 폐허가 되었지만 청련암이 그 법등을 잇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사중에 전하는 1842년(헌종 8)의 중창기(重創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어, 청련사가 자리한 자연적 입지를 짐작케 한다. 좌우에 둘러 있는 봉우리들이 높이 솟아 있어 마치 많은 별들이 북두성을 향하는 것과 같고, 앞뒤로 흐르는 골짜기 시내가 잔잔하여 수많은 옥가루가 허공에서 부서져 내린 듯하다. 이는 반드시 하늘이 아까워 숨겨놓은 곳이며 땅이 내보이기 인색하게 숨겨놓은 명승지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곳은 가람을 세워 법당을 창건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 청련암의 창건과 걸어온 길 *

처음 청련사는 영취산에 있던 대흥사의 작은 암자인 청련암(靑蓮庵)으로 창건되었으며, 대흥사의 동쪽에 있다하여 동암(東庵)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러한 초기기록은 1880년대에 절을 중창하면서 기록된 여러 현판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먼저 1842년(헌종 8)에 기록된 「영산현 영취산대흥사 청련암 법당이건중창기(靈山縣靈鷲山大興寺法堂移建重創記)」 현판에 의하면, 대흥사는 신라 때 원효스님이 세운 절로 이후 폐사되었다가 1628년(인조 6)에 중창하여 양수암(兩水庵)이라 하였다.

1676년(숙종 2) 대흥사의 옛 터로 옮겨 대흥사라 불렀는데 100여 년이 지나 다시 폐허가 되고 그 중 청련암만 어렵게나마 명맥을 유지하였다. 이에 덕암(德庵) 스님이 고을 사또와 신도들의 도움으로 1840년(헌종 6) 법당을 중창하기 시작하여 2년 후 초여름에 새로운 면모로 출발하게 되었다. 법당이 중창되는 이 시점을 전후하여 청련암에는 많은 불사가 이루어졌는데, 현존하는 현판기록에 의하면 1830년(순조
30)에 산령각을 건립하고 1834년(순조 34)에 법당을 보수하였으며, 1836년(헌종 2)에는 쾌엽(快曄) 스님이 법당의 상단불상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후 청련암은 근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법등을 계속 이어왔고, 근래에 들어서는 1983년에 옛 법당을 허물고 극락전을 새로 건립하였으며, 1993년 산령각ㆍ종각ㆍ요사ㆍ천왕문을 짓고 다보탑과 비로자나불상 등을 조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청련암(창녕) 대표사진

청련암(창녕)

청련암(창녕) 정보

📌주소 : 경상남도 창녕군 계성면 계성화왕산로 288-102


🌍홈페이지 : 정보 없음


📞문의처: 055-521-2185


🔔개장일: 정보 없음


❌휴무일: 연중무휴


🔊체험안내 : 정보 없음


😀체험가능 연령 : 정보 없음


👨‍👩‍👦‍👦수용가능 인원 : 정보 없음


🌞이용 가능 계절 : 정보 없음


🕗이용 가능 시간 : 정보 없음


🚘주차 가능 여부 : 주차 가능


💳신용카드 가능 여부 : 불가


👶유모차 대여 여부 : 불가


🐶반려동물 출입 여부 :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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